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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기록 *신소희 피아노 독주회, 2024년 3월 24일, 서울 아람아트홀 포레 녹턴 op. 63 / 쇼팽 발라드 op. 38 / 폴로네즈 op. 44 / 슈만 후모레스케 곡에 대해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쇼팽 발라드 2번의 갈라진 두 세계가 평온과 격동으로 손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 장조 도입부를 연습하며 사람들은 6박자 리듬과 4성부 화음, 노래의 연속성과 음색의 다양성을 분석하게 마련이지만 그렇게 닿을 수 있는 건 다만 연출된 평온이 아닐까 생각했다. 신소희의 선율에는 그런 요소들로 풀어지지 않는, 마치 잠들기 어려운 밤과 같은 억양이 있었고 그 억양은 지식으로 다듬은 것이 아니었지만 자신을 드러내려 무리하지도 않았다. 억양이 강세를 필요로 한다면, 신소희의 강세는 타인을 자극하기보다 스스로의 긴장을..
필립 자코테, <석간신문> *수정 예정, 공유 금지 빛이 우리 목 아래 얼굴을 파묻는 시각, 누군가 석간신문을 외쳐 알리고, 소리가 귀를 찌른다. 날은 포근하다. 이 도시를 스치는 이들은 쫓기듯 식사를 마치고 겨우 초록인 나무 하나 흔들리는 강변에 잠시 앉을 수 있으리라. 다만 내게 겨울이 오기 전 이 여행을 할 시간이 있을 것인가, 떠나기 전 한 번 너를 껴안을 시간이? 나를 사랑한다면 붙잡아 달라, 숨을 고를 시간을, 적어도 그저 봄이 가기까지만, 저 멀리, 움직임 없는 공장들에 불이 들어오는 데까지, 이 강물의 떨리는 평화를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우리를 조용히 내버려 둔다면…… 하지만 방법이 없다. 이방인이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 아니면 석상으로 변할 것이다.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아직 서 있는 도시들은 ..
롤랑 바르트의 음악비평 2023년 12월 『불어불문학연구』에 실린 논문입니다. 초록과 서론을 공유합니다. 롤랑 바르트의 음악비평 (kci.go.kr) 이 논문은 롤랑 바르트의 음악 관련 텍스트에 관한 포괄적인 고찰을 목적으로 한다. 바르트는 평생 음악을 가까이했으나 본격적인 음악비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로, 음악 담론은 후기 바르트의 사상적 변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먼저 그는 듣는 음악과 연주하는 음악을 구별하며 아마추어의 음악적 실천을 옹호하고,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서 경험을 성찰하며 음악 담론의 핵심으로 몸을 지목한다. 다음으로 바르트는 그가 ‘결정’이라고 부른, 음악을 하는 몸의 물질성을 토대로 텍스트 이론의 중심 개념인 시니피앙스에 접근한다. 1970년대 후반 바르트의 음악론은 사랑의 담론에 관한 글쓰기의..
시간의 흔적, 시선의 발견 : 마르셀 프루스트와 사진 2023년 2월 『인문논총』에 실린 논문입니다. 초록과 서론을 함께 올립니다. 시간의 흔적, 시선의 발견 : 마르셀 프루스트와 사진 (kci.go.kr) 이 논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타난 사진 주제에 관한 연구다. 사진 이미지와 지시대상의 관계를 성찰하는 20세기 후반의 사진 이론에 바탕을 두면서, 이 연구에서는 소설이 형상화하는 배움의 과정에서 사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논의하였다. 프루스트는 당대 사진의 사회적 위상과 기술적 혁신에 관심을 보였으며, 이 과정에서 시간과 시선이라는 사진 이론의 핵심 개념들에 도달하였다. 다음으로 소설의 주인공이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들을 분석해 보면, 그가 사진을 보는 법을 점차 배워 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은 지시대상의 부..
'잃어버린 시간'과 현대 소설의 출발 대우재단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지식의 지평』에 프루스트 사망 100주기를 기념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글의 도입부를 공유합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지식의 지평 (jipyeong.or.kr) “어젯밤 ‘끝’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1922년 이른 봄, 피로에 지친 마르셀 프루스트가 가정부에게 말했다.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그는 눈을 빛내며 덧붙였다. “이제 나는 죽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작가는 작품과 헤어질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작품을 떠날 권리가 없었다. 작품은 자체로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작품의 완성보다는 자신의 소진을 향해 나아갔으며, 얼마나 더 고치고 다시 쓸 수 있을지 가늠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으면 작품을 출판이 가능한 형태..
프루스트와 예술 작품의 존재론 2022년 6월 『불어불문학연구』 제130호에 실린 제 논문을 소개합니다. 아래 링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프루스트와 예술 작품의 존재론 (kci.go.kr) 이 연구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타난 예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 가운데 예술 작품의 존재론에 속하는 문제들을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소설 속에서 예술 작품의 창작과 수용을 서술하는 장면들은 작품의 본질 규정, 존재 양식, 존재론적 지위 및 근본 구조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반영한다. 프루스트는 먼저 미술 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을 검토하며 예술의 본질을 규정하는 문제가 존재 양식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다음으로 그는 연극 작품이 정신적 구상이나 물질적 실현 중 어느 한 쪽으로 환원되지 않는 지향적 대상이며, 그..
롤랑 바르트, <피아노의 추억> *피아노에 관한 롤랑 바르트의 짧은 글을 한국어로 옮겨 소개합니다. 바르트가 마지막으로 탈고한 글로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인 1980년 3-4월 사이에 발표되었고, 전집 5권에 실렸지만 그의 예술론을 모은 L'obvie et l'obtus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용할 경우 역자의 동의를 구하고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원문 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Roland Barthes, « Piano-souvenir », Œuvres complètes, tome V : 1977-1980, Le Seuil, 2002, pp. 898-899. 롤랑 바르트, (1980) 피아노에 대해 이제껏 사람들이 해온,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생각해본다. 문화적인 대상 가운데 피아노만큼 기능과 이미지, ..
스완과 주인공의 만남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제1부에서 주인공이 스완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3권 138-203쪽)은 「스완의 사랑」의 후일담에 해당하며 소설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스완과 주인공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어긋나는지 살펴보면 주인공의 글쓰기 소명 탐색이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주인공의 앞 세대 인물로서 스완의 위상입니다. 스완은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모델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장차 하려는 일에서 좋은 선례를 보이지 못한 실패자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부정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프루스트가 이런 유형의 인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겠습니다. 주인공은 짝사랑의 긴장에 사로잡혀 잔뜩 얼빠진 모습만 보이지만, 스완은 그런 주인공을 나름 똑똑하게 보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