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인문논총』에 실린 논문입니다. 초록과 서론을 함께 올립니다.
시간의 흔적, 시선의 발견 : 마르셀 프루스트와 사진 (kci.go.kr)
이 논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타난 사진 주제에 관한 연구다. 사진 이미지와 지시대상의 관계를 성찰하는 20세기 후반의 사진 이론에 바탕을 두면서, 이 연구에서는 소설이 형상화하는 배움의 과정에서 사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논의하였다. 프루스트는 당대 사진의 사회적 위상과 기술적 혁신에 관심을 보였으며, 이 과정에서 시간과 시선이라는 사진 이론의 핵심 개념들에 도달하였다. 다음으로 소설의 주인공이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들을 분석해 보면, 그가 사진을 보는 법을 점차 배워 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은 지시대상의 부재를 인식하게 하지만, 한편 대상의 동일성을 확인해 주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사진에 대한 배움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배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사진은 기억과 인상이라는 프루스트 문학의 두 원천에 연결되며, 특히 사진 현상의 비유는 개별적 경험의 일회성을 보존하는 창작 방식을예시하면서 사진과 문학을 유비 관계에 놓는다.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사진 주제는 삶에대한 성찰과 예술에 대한 배움을 잇는 매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상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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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세기를 풍미한 매체로 1839년 프랑스에서 처음 공표되었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그 후 32년 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사진의 역사를 쓰는 이들은 프루스트가 살았던 시기에 사진 매체가 본격적인 성숙기에 접어든다고 본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사진에 친숙했으며,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서도 사진이 당대의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든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논문은 프루스트의 작품에 나타난 사진 주제에 관한 연구로서, 작가가 서술하는 삶의 행로와 예술적 탐구에 사진 매체가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프루스트 작품에서 사진의 의미에 대해 중요한 발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문학 비평가이면서 사진 이론에도 커다란 자취를 남긴 수전 손택과 롤랑 바르트가 그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두 저자는 모두 프루스트가 생각하는 문학과 사진의 관계에 대해 유보적인 자세를 보였다. 손택에 따르면, “프루스트는 사진을 언급할 때마다 늘 비호의적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사진은 천박하고, 지나치게 시각 중심주의적이고, 그저 의도적으로만 과거와 관계를 맺는 그 무엇의 동의어였다.” 한편 바르트는 『밝은 방』에서 단언한다. “사진은 과거를 회상시키지 않는다(사진에는 프루스트적인 것이 없다).” 이들은 사진에 대한 프루스트의 언급 중 부정적인 쪽에 주목하며, 사진이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이 프루스트 식의 회상과 다르게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진이 기억을 대체할 수 있다면, 프루스트가 자기 문학의 원천으로 제시하는 비의지적 기억(mémoire involontaire)은 시각 정보를 평면에 기록하는 사진과는 비할 데 없이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바르트와 손택이 본 프루스트는 사진의 표면적인 사실주의를 넘어서 감각적 세계의 총체적인 재현을 노린 작가다.
반면 사진 영역에서 활동한 저자들은 프루스트와 사진의 관계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사진가 브라사이는 전기적 접근을 통해 프루스트가 사진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밝힐 뿐 아니라, 벤야민과 바르트와 같은 현대 논자들의 이론을 상당 부분 선취했다고 주장한다. 사진사가 장 프랑수아 슈브리에에게 프루스트는 현대 사진의 길을 계시하는 작가다. 학계에서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영미권 학자들이 주로 문화사적 관점에서 프루스트 작품 속의 사진 주제를 연구했다. 상호매체적 접근의 기틀을 놓은 미케 발의 선구적인 작업 이후 프루스트를 당대 시각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해석하는 연구, 현대성에 관한 철학적 성찰의 맥락에서 읽는 연구, 프루스트의 글쓰기에 사진술이 끼친 영향을 탐색하는 연구들이 제출되었다.
이상의 성과들에 바탕을 두고, 또 손택과 바르트 이후 집중적으로 발표된 사진 이론의 고전적인 문헌들을 참고하면서,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탐색과 깨우침의 소설로 볼 때 사진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사진과 사진에 찍힌 대상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시간, 응시자와 피사체의 관계를 가리키는 시선을 주요 개념으로 삼는다. 본론에서는 작품 속의 사진 주제를 3가지 관점에서 조명할 것이다. 예비적 고찰에 해당하는 2장에서는 프루스트의 소설 속에 사진 매체의 역사가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논의한다. 다음으로는 작품에서 사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전개와 그 위치를 규명한다. 3장에서는 주인공이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들을 모아 분석하여 그의 인간적·예술적 성장에서 사진 매체가 맡는 역할을 따져본다. 4장에서는 프루스트가 문학과 사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살펴본다. 소설의 마지막 권 『되찾은 시간』에 등장하는 문학에 대한 이론적 성찰에서 작가는 사진 촬영과 문학 창작을 때로는 유비 관계, 때로는 대조 관계로 파악하는데, 언뜻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는 그의 입장을 가능한 한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본론 마지막 장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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