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불어불문학연구』에 실린 논문입니다. 초록과 서론을 공유합니다.
이 논문은 롤랑 바르트의 음악 관련 텍스트에 관한 포괄적인 고찰을 목적으로 한다. 바르트는 평생 음악을 가까이했으나 본격적인 음악비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로, 음악 담론은 후기 바르트의 사상적 변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먼저 그는 듣는 음악과 연주하는 음악을 구별하며 아마추어의 음악적 실천을 옹호하고,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서 경험을 성찰하며 음악 담론의 핵심으로 몸을 지목한다. 다음으로 바르트는 그가 ‘결정’이라고 부른, 음악을 하는 몸의 물질성을 토대로 텍스트 이론의 중심 개념인 시니피앙스에 접근한다. 1970년대 후반 바르트의 음악론은 사랑의 담론에 관한 글쓰기의 영향을 받는다. 그는 음악을 통해 사랑에 빠진 주체의 형상들을 탐구하는 한편,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글쓰기를 찾아 숙고를 거듭한다. 낭만주의 가곡과 피아노 음악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바르트의 음악비평은 메타비평적 성찰이자 작가적 자유의 탐색, 그리고 반시대성의 담론으로서 후기 바르트의 사상적 여정을 요약하는 조감도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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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1915-1980)의 비평적 여정에서 음악이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 것은 1970년의 일이다. 이 해 그는 『S/Z』를 출간하며 전후 몇 해에 걸친 사상적 변모에 이정표를 세웠다. 이후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바르트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꾸준히 음악을 다루는 비평문을 발표했으며, 『텍스트의 즐거움』(1973),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1975), 『사랑의 단상』(1977), 『밝은 방』(1980)으로 이어지는 주요 저작에서도 음악에 대한 언급은 빠지지 않는다. 이로부터 음악의 의미 및 음악적 경험에 대한 성찰이 탈구조주의자 바르트의 변모와 관련이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학비평가로서 이론적 전환을 통해 비로소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바르트는 음악에 대한 글을 발표하기 전에도 음악에 깊은 애정을 품고 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말년의 바르트가 저술가로서 또 한 번 전환을 구상하던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하는데, 삶의 마지막 2-3년 동안 음악은 바르트에게 점점 더 중요한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르트의 음악론에 대한 이해는 그의 후기 저술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글은 바르트가 음악에 관해 쓴 글 전반에 나타난 음악비평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바르트가 발표한 음악에 대한 글 대부분을 모은 『오브비와 옵튀스 L’obvie et l’obtus』가 작가 사후 1982년에 출간된 이래 이 주제에 관한 연구는 산발적으로 계속되었다. 바르트 음악론과 텍스트 이론의 관계를 해명한 프랑수아즈 에스칼의 논문을 연구사의 출발점으로 잡을 수 있다. 1970년대 전반기의 음악론을 주로 독해한 에스칼은 음악의 영향이 기호학자 바르트의 변모 전반에 스며 있음을 보인다. 피터 데이언은 바르트의 음악비평에서 문학의 정의가 음악 개념에 의존하며, 여기 예술에 대한 본질주의적 사고가 함축되어 있음을 논증했다.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의 틀 안에서 바르트를 읽는 독자의 시야를 넓히는 주장이겠으나, 데이언의 논의는 성악에 대한 글에 국한되어 있다. 작가가 평생을 함께한 악기는 피아노였다. 프랑수아 누델만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서의 바르트를 조명한다. 다만 피아노 연습과 학문적인 삶을 분리하고, 바르트에게서 음악을 일종의 해방구로 묘사하는 그의 접근이 아마추어 개념의 이론적 파급력을 온당하게 평가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 논문의 한 가지 목적은 바르트가 건반 위에서도 진지한 의미에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음을 밝히는 데 있다.
바르트의 음악비평에 대한 연구는 탄생 100주년인 2015년에 전환기를 맞는다. 바르트와 음악을 주제로 삼은 학술대회가 파리에서 사흘에 걸쳐 열렸고, 여기서 비평가이자 애호가, 나아가 음악인으로서 바르트의 초상이 입체적으로 재구성되었다. 발표된 논문들을 모아 펴낸 클로드 코스트와 실비 두슈는 바르트 음악론의 의의를 ‘낭만주의의 재발명’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했다. 바르트에게 “낭만적이 된다는 건 개인, 감상성, 타자와의 거의 신비적인 융합을 옹호하는 일이다.” 『사랑의 단상』 이후 만년의 바르트를 새롭게 조명한 연구들을 반영한 결론이다. 다만 그가 멈춘 지점이 곧 그의 여정을 요약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논문의 다른 목적은 바르트가 마지막 10년 동안 발표한 여러 음악비평 텍스트 사이의 변화를 가능한 한 통시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노래 속에서 언어와 음악이 마주치는 자리를 분석하는 문학이론가 바르트와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건반 위의 관능을 성찰하는 바르트가 있고, 독자의 권리와 쾌락을 주장한 1970년대 초반의 바르트와 창작자로서 스스로의 재탄생을 몽상한 말년의 바르트가 있다. 논문의 구성을 통해 우리는 이처럼 서로 다른 면모들을 연결하는 방식을 탐색하고자 한다. 우선 음악을 주제로 삼은 첫 에세이 「무지카 프락티카 Musica Practica」(1970)가 발표될 때까지 바르트 음악론의 다양한 배경들을 살필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서는 먼저 음악적 실천이 어떻게 독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문학론에 연결되는지 검토하며 아마추어리즘의 이론적 함축을 따지고, 다음으로는 음악비평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어떻게 음악을 하고 듣는 몸을 활용하는지 지켜보면서 탈구조주의적 텍스트 이론과 음악의 관계를 분석할 것이다. 간추려 말하면 전자는 피아노, 후자는 성악에 대한 바르트의 관심에 대응한다. 마지막으로는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이후, 특히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생애 마지막 시기 바르트의 글쓰기에 일어난 변화를 음악을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밝은 방』에서 온실 사진을 소개했던 말을 빌리면, 말년의 바르트는 사진만이 아니라 음악에도 “즐거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랑과 죽음이라고 낭만적으로 부를 수 있는 무언가와 관련해서 질문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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